누가복음 16:19~31

서 경 철 목사
(서울홍성교회 담임)
무엇이 인생 이후에는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요? 예수님은 어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나사로는 사회적 약자였고 소외된 이웃이었습니다. 부자는 상류층의 사람으로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부자이든 거자이든 정해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음 이후에 영원한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부자는 죽음 이후에 음부(히. 스올 :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는 곳)에서 불 가운데에 고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멸망받지 않기를 열망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초대는 무엇입니까?
1. 아버지는 당신의 고통에 해답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불의가 심판을 받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친밀함과 풍성함을 누렸습니다. 이 땅에서 흘렸던 모든 눈물에 대해 따스한 위로를 받습니다.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지금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위로가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에 초대를 받은 자들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고통의 해답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품 밖에는 없습니다.
2. 아버지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부자는 불꽃 가운데에 심판을 받으면서 나사로를 다시 보내어 자신의 형제들이 회개하여 이 고통에 오지 말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준엄하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부자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고 성경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회개란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것에서 돌이켜서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회개한 자는 분명한 열매를 맺습니다. 만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을 때 우리는 심판의 불에 놓이게 됩니다.
예수님은 회개를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소외된 이웃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절정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죽음의 운명을 깨뜨리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와 허물로 비참하게 사는 우리들을 당신의 아들 딸로 입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대가로 자신의 독자 아들의 생명을 바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히 안전합니다. 오늘 아버지의 사랑의 초대에 응답을 하십시오. 아버지 안에서 위로를 받으십시오. 이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상담문의 : ☎ 391-4567>
저작권자 © 은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