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상미 부장

이미지로 질병의 비밀을 푼다

코로나19 조기 진단하는 ‘구강 가글’ 공동 개발

내 일의 책임자는 바로 ‘나’

사람들은 과학기술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친 한국 여성 과학자가 적지 않다.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기업에서 탁월한 성과와 학문적 업적을 쌓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위셋, WISET, 이사장 문애리)은 뛰어난 여성 과학자·기술인을 찾아 소개하는 ‘She Did It’ 캠페인을 하고 있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위셋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공공기관으로, 이공계 여성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도를 꿈꾸는 여성을 위해 위셋의 협조를 받아 ‘She Did It’에 실린 여성과학자들 인터뷰를 주기적으로 전재(일부 수정)한다. 인터뷰 전문은 위셋 홈페이지(wiset.or.kr)나 위셋 블로그(m.blog.naver.com/wisetter)에서, 동영상은 유튜브 위셋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orea Basic Science Institute, KBSI) 전상미 부장은 최첨단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EM) 기술을 기반으로, 급속동결된 세포 소기관 및 단백질의 근접 자연상태(near-native state)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를 한다. 이를 통해 암 또는 바이러스, 세균 등의 기능 및 역할을 이해하고, 진단기술, 치료제, 백신 개발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전상미 부장은 백신, 치료제 개발의 기본이 되는 단백질 3차원 구조분석을 위한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의 연계형 이미징 검출을 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편장착 홀더를 포함하는 워크스테이션 또는 이를 포함한 연계형 이미징 검출장치를 이용한 연계형 현미경 관찰 방법등 관련 기술로 10개의 특허를 받았다.

현재는 연구자이자 KBSI의 기획부장을 맡아 연구원의 예산확보 및 활용, 사업구조 조정 등을 포함한 연구원 경영을 맡고 있다.

‘Seeing is Believing’ 전자현미경의 매력에 빠지다

학창 시절 모든 과목을 두루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화학 선생님을 좋아해 화학을 열심히 공부했고, 가장 성적이 좋았던 화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관련 Aβ peptide의 구조를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며 보이지 않는 생명현상을 시각화하는 전자현미경 연구 분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한 간접적인 결과 해석이 아닌, 보이는 이미지를 통한 직접적인 결과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지요. 한마디로 ‘Seeing is Believing’이었습니다.”

현미경 이미징기술 통한 구조분석으로 다양한 생명현상 연구

미국 Medical Center에서 박사 후 연수원 과정으로 일하면서 인간의 면역체계를 파괴하여 AIDS를 일으키는 HIV-1(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기술을 기반으로 실시간 형광현미경 이미징기술을 결합시킨 연계형 현미경 이미징(Cryo correlative light and electron microscopy, Cryo-CLEM)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해 바이러스의 세포로의 초기 감염 상태를 나노스케일(1nm = 10-9m)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HIV-1의 감염 메커니즘을 규명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사이즈는 ~100nm 정도로 매우 작고, 감염되는 수도 적고, 감염 과정이 매우 역동적입니다. 이처럼 초고속 실시간 형광현미경 이미징을 통해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샘플을 급속동결한 후, ‘초저온 형광현미경-전자현미경 이미징을 통해 타깃 바이러스의 원하는 감염 단계에서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3차원 구조분석을 통한 바이러스의 세포 내 구조적-기능적 관계를 이해하고 묘사합니다.”

제 연구의 주가 되는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 Cryo-EM)’은 수분을 포함한 바이오시료를 급속 동결하여 자연 상태에 근접한 3차원 구조를 원자 분해능 수준까지 규명하는 기술입니다. ‘전자현미경 이미징은 진공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수분이 존재한다면 제대로 된 이미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바이오시료에서 수분을 제거하고 이미지를 얻고 있지요.”

생체시료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우리 몸의 70% 이상은 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수분을 포함한 상태의 생체시료야말로 어떤 인위적인 변형(artifact)을 가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구조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액체질소를 이용하여 시료를 초저온(-196) 온도로 빠르게 급속동결하여 유지됩니다. 순식간에 물의 온도를 낮추면 액체상태가 얼음결정 대신 비정질의 유리화된 상태(vitrification)를 갖게 되어 전자빔회절에 방해받지 않고 수분을 포함한 상태의 생체시료 이미지를 제대로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분을 가지고 있는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투과전자현미경을 통해 빵빵한 공처럼 동그랗게 보여도 실온에서 수분을 제거한 미토콘드리아는 그렇지 않죠.”

시료의 손상을 줄여 실험 성공률을 높이다

“10년 전 매우 고가인 전자현미경을 여러 대 가지고 있는 KBSI 전자현미경부로 입원했지만, 그때만 해도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 전용장비나 바이오시료의 초저온 이미징 실험을 위한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연구했던 경험으로 장비를 부분적으로 개조, 세팅하고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 시료 급속동결방법 및 분석기술을 동료연구원들과 시료에 적용하며 KBSI의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수분을 포함한 생체시료가 초저온(-196) 온도로 빠르게 급속동결된 후에는 이미지를 얻기까지 모든 과정이 액체질소온도에서 수행돼야 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연계형 현미경 이미징(Cryo-CLEM)을 위해 동결된 시료는 초저온 형광 이미징 단계로 이송되고, 연이어 초저온 전자현미경 이미징 단계로 또 이송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러한 여러 번의 시료 이송단계에서 시료의 손상은 불가피했죠. 저는 시료 이송단계를 최소화하기 위해 냉각된 시료를 전자현미경 홀더에서 직접 형광현미경 이미징이 가능한 장치를 개발했고, 시료가 손상될 기회를 줄이고 실험 성공률을 높였습니다. 시제품을 제작하고 실험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시제품의 완성도를 높여나간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코로나19 조기 진단하는 구강 가글공동 개발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던 2020, 동료 박사님이 공동연구 제안을 하셨습니다. 바이러스를 제어하는 콩 단백질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이미지를 통해 보고 싶다고 하셨죠. 바이러스의 크기는 ~100nm 나노스케일로 전자현미경 기술로만 이를 명확하게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코로나 바이러스인 ‘HCoV-229E’와 실제 코로나19 증상을 일으키는 ‘SARS-CoV-2’의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 이미지를 얻고, 바이러스의 내부 유전물질, 바이러스 막,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까지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이미지를 확인했습니다. 작두콩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섞어 관찰한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 이미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표면을 둘러싸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의 세포로의 감염력이 약화됨을 볼 수 있었지요.”

“SARS-CoV-2는 감염의 위험성으로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의 고립된 실험실에서 매번 바이러스의 불활성화(inactivation) 과정을 거치고 이를 재확인한 후 일반 실험실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동료 박사님들, 연구원들과의 협력이 중요했지요. 이러한 원천기술 및 제품개발을 통해 코로나19와 관련한 사회현안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Research(연구)= Re(다시)+Search(찾기)

우리는 연구를 Research라고 합니다. ‘Re’는 접두사로서 다시라는 뜻이 있고, ‘Search’는 명사로 찾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연구(Research)는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를 위해 부족한 지식들을 채워나가며 끊임없이 찾고 찾는 지루한 과정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 같습니다.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며 축척되어가는 유형, 무형의 연구결과들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내 일의 책임자는 바로

박사 학위 시절 알츠하이머 관련 Aβ peptide의 구조가 Cu2+(구리이온)의 상대적인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양한 장비를 통해 증명하여 화학분야에서 꽤 저명한 <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 학술지에 논문 게재가 승인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실험 아이디어부터 수행, 논문 작성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졌기에, 저자는 선생님(advisor)과 저 둘뿐이었고, 매우 자랑스러웠죠.”

논문이 출판되고 후속 실험을 야심차게 이어가고 있을 때 제가 논문에 기재했던 구리이온의 상대적 농도가 논문에는 10배씩 덜 표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대비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다시 심사를 받고 논문 결과와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수정한 정오표(Corrigendum)를 학술지에 게재하고 논문을 유지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없었고, 큰 실수를 저지른 거 같아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했어요. 한국에 학위 없이 돌아가는 건 아닌지,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렸지요. 다행히 실수를 고백 후 문제없이 논문을 수정, 재심사하고 변함없이 논문의 중요성을 인정받으며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이후 연구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더더욱 실수 없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에 임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혼자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며 괜찮겠지하면 괜찮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한 일은 잘못되면 반드시 제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확신이 없는 부분은 다시 확인하고 깔끔하고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제가 미국 생활에서 가장 크게 배운 삶의 자세입니다.”

최첨단 현미경 시설 기반 연구로 신약 및 치료제 개발 앞장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인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여, 가속전자가 자기장 속을 통과하며 발생하는 방사광을 이용하여 물질의 미세구조와 현상을 관찰하는 대형 시설인 방사광 가속기는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거대한 슈퍼현미경인데요. 제가 속해있는 KBSI2021년 충북 오창부지에 구축되는 4세대 원형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앞으로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 관련 연구개발과 방사광 가속기 연구의 결합으로 생명현상의 시각화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며, 이와 더불어 충북 오창을 신약개발을 위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분석의 메카로 만들고 싶습니다.”

Q&A

Q1.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연구자로서 최신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련분야의 연구논문을 읽고 동료, 선후배 연구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교환합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별 융합연구가 진행되어지며 수많은 연구정보와 공동연구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연구자의 능력 안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책임감 있게 연구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정부 과학기술 정책들을 파악하고 연구 방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또 연구자도 창의성과 감성이 풍부합니다.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해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구하고, 좋아하는 악기 하나쯤 다루고, 필요하다면 제2 외국어도 배우고, 가끔은 친구들과 만나 스트레스도 풀길 바랍니다.”

Q2. 단백질 구조분석을 연구하는 것이 바이러스 등의 질병 대응에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A 생체 내의 단백질의 자연상태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세포 내의 중요한 생명현상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비밀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이 있다면 그 타깃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 단백질의 활성부위에 퍼즐처럼 맞추어지는 구조를 가진 물질을 디자인하여 활성도를 비활성화하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기반 신약개발 과정은 결코 말처럼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예전에 약물후보를 무작위로 테스트하고 또 무작위로 구조 변형을 일으켜 효능을 가진 약물을 골라낸 것에 비하면 신약개발의 시간과 부작용의 정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명적인 방법이지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초반,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을 통한 구조분석을 통해 SARS-CoV-2의 스파이크 단백질과 세포 수용체의 특정상태의 3차원 입체구조가 명확히 밝혀지고, 이 구조기반으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비교적 단시간에 개발된 것이 대표적이지요.”

Q3. 이미징 연구가 미래 산업에서 어떻게 활용되나요.

A 다양한 종류와 스케일의 최첨단 이미징 기술들을 결합한다면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이오샘플의 공간적, 시간적, 구조적, 생화학적, 생물리학적인 정보들을 상호보완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고, 세포내의 중요한 생명현상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료제공 :우먼타임스 심은혜 기자 semaeh@wome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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