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지 / 서울은평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 팀장
홍은지 / 서울은평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 팀장

아동이 실내화주머니를 세탁하지 않은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친부가 아이의 머리를 가격하고 욕설을 사용하여 아동학대로 신고 된 사례가 있었다. 아동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스스로 부모와 떨어져 있겠다고 하여 청소년 쉼터로 분리보호 조치됐다.

아동이 부모와 분리되어 생활하게 된 청소년 쉼터는 핸드폰 사용이 제한되었고,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식사, 기상·취침시간 등의 규칙으로 아동에게는 환경변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다. 이에 아동은 다른 보호시설로의 이관을 원했다.

입소 전 시설에 방문하여 상담 하는 날. 아동은 개인 가방에서 A4용지를 꺼냈다.

핸드폰을 본인이 원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한 방에서 몇 명이 생활하고 있는지

학교가 먼 거리인데 전학하지 않고 통학이 가능한지, 주말에는 자유시간이 있는지, PC는 개인당 지급이 되는지 등 확인하고 싶은 점에 대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근무하는 10년 동안 이렇게 체크리스트를 적어서 오는 아동은 처음이었다. 상담에 동석한 시설관계자도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쯤 되면 시설에서 지내기 어려운 아이라는 선입견이 생기려는 찰나, 아동은 우리의 표정을 느꼈는지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이 걸린 일이잖아요

2020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는 약 30,905명의 아동이 학대를 경험했다. 그 중 원가정과 분리된 아동들은 전체 학대피해아동의 12.7%3,926명으로, 학대피해아동 100명중 12명은 부모와 분리된다는 뜻이다.

UN아동권리협약 제12(아동의 견해 존중)에는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의 경우, 본인과 관계된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동의 말처럼 인생이 걸린분리보호조치과정에서 우리는 아동의 의사를 충분히 듣고 반영하여 결정을 내리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학대피해아동의 경우에는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이 배제되거나 의견청취에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는 아동의 청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으로, 아동이 처한 상황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 조사 및 수사단계에서 아동과 학대행위자를 분리하여 상담하고, ‘국선변호인’, ‘임시조치등과 같이 아동에게 낯선 용어는 아동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 시설로 분리보호 될 때 아동이 궁금한 것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설명해주는 것 등이 그러하다.

아동학대 현장의 관계자들은 아동 청문권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동의 성별과 연령, 장애 유무를 고려한 보호시설과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며, 행정 및 사법 절차상 아동 보호 최우선의 가치와 충돌하는 부분이 현장에서 계속해서 발생하는 등 아동의 청문권을 충분히 뒷받침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의 혼란이 크다.

위 사례에서도 여러 선택지를 제안하며 아동의 의사를 묻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아동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통보수준일 수 있는 것이기에 아동을 둘러싼 유관기관,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아동의 청문권 보장을 위해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은 본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동이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어른들의 인식과 사회의 제도는 아동을 어른과 대등한 주체로 보고 있는가?

사회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아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 최상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아동에게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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