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vis 16: 7-11

서 경 철 목사
(서울홍성교회 담임)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마주한 자들에게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깊은 우울증(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태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뿌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할 때에 어떠한 마음을 가지셨을까요? 성도는 죽음 앞에서 혹은 죽을 것 같은 고난 앞에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할까요? 고난 주간을 앞두고 우리는 죽음을 마주한 예수님과 성도의 마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동행의 평안
시편 16편의 저자 다윗은 주님을 항상 자신 앞에 모셨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 16:8) 왜냐하면 하나님 만이 피난처요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시 16:1)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행복이 없습니다.(시 16:2) 주님과의 동행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하나님이 오른편에 계시다라는 것은 함께 동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기에 인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철저히 혼자 계셨지만,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평강을 고백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 16:33) 성도는 죽음 앞에서 평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2. 버림 받지 않을 것에 대한 확신
구약에서 스올은 죽는 자가 가는 곳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곳입니다. 고통의 절정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영에 감동을 받고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 16:9)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구절은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데에 인용되었습니다.(행 13:36-37)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눅 9:22)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막 14:3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절규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인생이 절망의 심연에 빠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내 영혼을 절망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파멸에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3. 생명의 열매에 대한 기쁨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9, 11) 시편 16편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는 기쁨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쁨 때문에 고난을 인내하셨습니다. 앞으로 누릴 기쁨 때문에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우리를 미리 바라보시고 기쁨으로 고난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의 열매입니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주님이 누리셨던 그 기쁨을 묵상하십시오. 종교적 의무감 때문에 금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기쁨 때문에 자기 절제의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의 기쁨 때문에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 삶으로 인해 생명의 열매가 가득히 맺혀져서 예수님의 영원한 기쁨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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