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 1-3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고요한 모습은 엄마 품에 있는 젖 뗀 아기입니다. 다윗은 131편에서 자신의 심령을 젖 뗀 아기에 비유합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 같도다”
파란 만장했던 다윗의 인생은 오늘날 현대인의 인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 안에서 젖 뗀 아기가 누리는 고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젖 뗀 아기와 같은 절대적 안식은 어떻게 찾아올까요?

1. 깨어진 심령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라고 고백합니다. 교만이란 자신의 인생의 보좌에 자신이 앉아서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自己義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모두는 교만의 본성을 가진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교만은 깨어집니다. 자신의 죄악을 안고 아파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진 심령입니다. 주님은 깨어진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을 품어 주십니다.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대적하고 정죄해도 주님은 더러운 옷을 제거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리는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순간 우리는 주님 앞에서 화목된 자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립니다.
2. 용서의 마음 안에서
다윗은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라고 고백합니다. 오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형제들을 판단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fms 사람들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자는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매일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로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주님께 죄 용서를 받았기에 우리도 이웃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받았기에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않됩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만일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우리속에 거대한 들보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의 용서를 받은 자로서 겸손하게 살아갑시다. 일터에서 존중과 용서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기쁨과 평안이 한량없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검손한 동행 안에서
다윗은 마지막으로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 자신은 한번도 왕이 되려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저 주님과 겸손하게 동행했을 뿐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다 보니까 주님이 자신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했을 뿐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큰일을 이루었어도 그 일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갑작스런 폭풍우가 불어 닥칠때 전능자의 품을 바라보십시오. 내 모든 시간표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높아져도 주를 위하고 낮아져도 주님을 위할 뿐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고 죽어도 주를 위할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 안에서 창 자국을 믿음으로 터치합니다. 그 창자국에서 절대적 고요와 편안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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