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14-17

성도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포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포로가 된 것에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4절에서 ‘이기게 하다’라는 단어는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끌고 개선 행진을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왜 그리스도의 포로로 끌려가는 것에 감사를 드릴까요? 그리스도의 포로된 자는 왜 감사할까요?

1. 약함이 강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화에는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눈물과 약함을 너무도 솔직히 오픈합니다. 자신은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고,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합니다. 드로아에서는 디도가 오지 않았다고 큰 프로젝트도 포기했습니다. 바울이 나약함을 감추지 않은 것은 약함을 드러낼수록 그리스도의 능력이 더욱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죽을 만큼 힘들 때에 위로하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눈물 때문에 회개의 열매가 맺혀 집니다. 큰 성과 대신에 소중한 동역자를 얻습니다. 자신의 약점 때문에 낮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더욱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약함이 강함이 되기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포로로 사는 것에 감사를 드리십시오.

2. 복음의 증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또 감격했던 이유는 포로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서 영원한 진노 아래에 놓여 있던 자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포로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그리스도 때문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가 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살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건물과 외적인 모습으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포로로 사는 사람들만이 이웃에게 감동과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3. 위선에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체험했습니다. 주님이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인생을 책임지셨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그러나 거짓 사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음에 불순물을 섞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십자가를 생략하고 번영의 신학만을 전했습니다. 주님은 위선을 탈을 쓴 지도자들을 엄중히 책망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고 꺼져가는 등불 같은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세상적으로 가난해도 복음의 부요함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해도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로 사는 은혜를 날마다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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