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매주 목요일, 은평구청 앞 초록 사무실에는 이른 시간부터 사람이 북적인다. 오늘은 초록의 뇌졸중장애인들로 구성된 ‘물사랑’팀의 정기 모임이 있는 날, 밤사이에 별다른 일은 없었는지…. 어제와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두들 수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반짝인다.

‘물사랑’은 장애인을 주축으로, 생명을 돌보고 키우는 것으로부터의 ‘힐링’, 낯선 움직임을 익숙하게 스스로 하기까지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재활치료’, 무엇보다 판매를 통한 수익사업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2015년 처음 일곱 개의 수조로 시작해 작년 하반기 15개의 수조를 증설하였으며 몇 차례의 치어를 길러내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병진
뇌졸중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사단법인 초록(www.ghelp.or.kr)에서 운영하는
‘물사랑팀’의 회원으로, 지난 1년여의 시간을
이 작업에 빠져 활동 중이다.

Q 처음 이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A 장애를 입기 전, 저는 각종 곤충, 열대어뿐만 아니라 사료와 필요한 용품까지 판매를 하는 곤충 판매사업에 종사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열대어를 키우면서 물고기들의 멋진 유영과 알이 부화되어 치어가 되어가는 신기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병으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고, 저는 그 끝을 가늠 할 수조차 없는 깊은 우울의 수렁에서 헤어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병과 신체의 장애, 앞으로 살아 갈 날도 걱정이었지만 어렵게 밑바닥부터 일궈온 사업을 놓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그러나 저에게 ‘장애’가 그랬듯이 ‘기회’ 또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저를 찾아오더군요.
초록에서 뇌졸중 장애인들과의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였고 그것이 바로 물고기를 키우는 사업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다른 어떤 분들도 저만큼 신나고 기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고도 떨칠 수 없었던 ‘열대어 키우기’을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함께’한다니 ‘할 수 있을까?’라는 소심한 망설임도 한방에 사라지더군요.

이전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물 갈아주는 일도 한 손으로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함께 시작한 팀원들 역시 불편한 몸놀림과 어색한 작업에 당황해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고 새로 들어오는 팀원에게 실수담을 곁들여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것도 능숙합니다.

Q ‘물사랑’, 그리고 팀원들에 대하여….

A 처음 저를 포함한 뇌졸중 및 뇌병변 장애를 가진 다섯 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초록의 오동근 팀장님이 이 분야에 정통한 분이어서 시작 할 때 저희 모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주 1회, 물고기에 대한 기본교육과 각각의 특징, 장단점, 수조의 환경 만들고 유지하기, 수족관 현장에서의 교육, 판매에 이르기까지, 지난여름과 가을, 겨울을 ‘물’속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물사랑’팀은 팀원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 이해의 기초 공사를 튼튼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 계신 분들로는 우선 팀의 실세인 은경누님이 계시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실함으로 무장된 비오씨, 선글라스조 조상필씨, 마지막으로 합류한 이성권씨까지입니다.

매주 교육모임, 단체 카톡, 월 2회 정도의 식사 모임 등을 통하여 서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물고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는데, 진정 이것이 제가 꿈꿔온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절대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사고 전의 그립던 시절이 제 앞에 새로이 펼쳐져 있음을 느끼니 마음의 병도 우울함도 서서히 사라지더군요.

Q ‘물사랑’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을 때.

A 작년 8월인가 새로운 종류의 물고기가 계속 들어오고, 초반부터 키우던 안시 롱핀이 처음으로 새끼를 수 십 마리를 부화하여 노란 꼬물이들이 바글바글 몰려다니고, 모두들 난생 처음 보는 물고기가 호박과 시금치 먹는 모습에 홀딱 빠졌었습니다. 사무실이 장애인 단체라 여러 사람들이 다녀가는데 보는 사람마다 뭐 하나라도 먹이려고 먹이를 주다 보니 복부비만 알풀(구피 종류)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꺼번에 안시의 새끼들이 죽어버렸습니다. 그 날 아침 팀원 모두가 모였고 오동근 팀장님과 물고기 전문가와 함께 원인분석과 재발 방지를 위한 회의를 하였었습니다.

얼마나 진지하던지…. 여러 경로를 통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수족관의 수온이 너무 낮았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너무 무절제하게 줌으로써 남은 먹이가 물속에서 썩어 물이 혼탁해진 것이 두 번째 이유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사소한 것 몇 가지... 저는 그 때 팀원들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에 좌절 않고 거기에 맞서 한 마음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 각자의 최선을 다하던 그 들을 보았을 때 이 일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에 텅 빈 수조를 보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들과 함께 초록의 ‘물사랑’에 든든히 뿌리가 내려가고 있음을 절감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최적의 수온 유지와 잔반 없는 식사를 통하여 예쁘고 귀여운 값하는 상전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지켜 갈 수 있도록 여러 명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장애인 여러분! 힘내십시오!!!
Q 정병진의 이야기.

 

A 저는 너무도 평범하고 참 긍정적인 사람임에도 어느 날 갑자기 제 앞을 막아 선 장애로 저와 제 가족은 인생이 바뀌고 또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모두 유사한 감정의 변화와 시간을 거치셨을 것 같습니다.

장애로 좌절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지금보다 더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거나 tv앞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암담했던 터널을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니 정말 사람 사는 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물사랑’팀은 제게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로 인하여 자유롭거나 큰 동작은 할 수 없지만 제가 보살피는 수많은 물고기들을 보며 자유와 휴식을 느끼고, 저와 함께 이 일을 시작한 동료들을 보면 뻐근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둡고 힘든 상황에 계시겠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움직이는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저와 같은 뇌졸중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그러한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스스로를 드러내고 어려움을 나누며, 공동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하고, 궁금해 하고 배워가는 시간들은 틀림없이 여러분들을 변화시킬 것이고 그로인해 차츰차츰 자신의 마음의 병이 사라지는 것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계기가 되어준 것이 저에게는 초록의 ‘열대어 키우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앞으로 장애인 회원들과 같이 물고기 키우는 것을 열심히 하고, 수족관을 예쁘게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돈 안 드는 수족관 만드는 법도 배우고 싶습니다
또 열대어를 키워서 장애인분들에게 나눠주고 그분들과 같이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우리도 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장애인 여러분! 힘내십시오!!!
www.ghel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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